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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지 작

jihba 2024. 2. 1. 20:25


피규어 제작을 하는 남주와 카페 알바생 여주의나이차 커플. 카페 주인인 남주 친구의 적극적인도움으로 인연을 맺게 된다.두 사람간의 큰 갈등은 없고 남주가 그의아버지와 부자간의 갈등으로 일방적인형과의 차별을 받게 되는데 나중에 여주의활약으로 모두 화목한 가정을 이루게 된다.여주가 짝사랑하던 남조가 잠깐 등장 하는데너무 싱겁게 퇴장해 버려서 주인공들 간의이야기가 너무 잔잔하게만 흘러가는 게 단점이다.피규어 제작이라는 남주의 직업이 독특했다.
어쭈?
준혁이 꿀밤을 놓으려는 듯 손을 번쩍 드니 윤주가 틈을 놓치지 않고 그 손을 붙잡았다. 놀라 움찔하는 준혁을 보고 매력적으로 웃더니 그 품에 냉큼 안긴다. 안기라도 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아주 대범하게.
야……, 윤, 윤주야.
네?
준혁은 어정쩡한 자세로 팔을 들고 멈췄다. 때마침 지나가던 승무원이 두 사람을 보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민망함에 귓바퀴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준혁이 꼼짝도 못한 채 유리창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본다. 아. 이 멍청이. 준혁이 콧등을 찡긋하더니 이내 윤주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그 단단한 팔에 힘을 주어 당기니 윤주는 맥없이 끌려와 자신의 가슴에 밀착했다.
너 자꾸 어설프게 도발하면 혼난다?
……잘못했어요.
윤주가 빨개진 볼을 두 손으로 가린다.
지금은 기차 안이잖아. 어차피 나중에 더 좋은 곳에서 하게 될 건데 뭐 하러 미리 힘을 빼? 좀만 참자, 아가씨.
나중에 더 좋은 곳에서 하다니요? 뭘요?
어울리지 않게 시치미를 떼네.
저 정말 모르겠는데요? 그리고 제가 뭘, 뭘 했다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냥 품이 넓고 따뜻해 보여서 안긴 게 다인데.
정말 그게 다야?
윤주의 작은 입이 꼬물꼬물 움직인다. 웃을랑 말랑 억지로 웃음 참고 있는 게 다 보인다, 보여. 준혁은 윤주를 제자리에 딱 밀어 앉힌 뒤 대신 작고 보드라운 손을 붙잡았다.
자는 척 하면서 우리 지켜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지금은 가만히 갑시다.
정말 저 이상한 여자로 몰지 마세요.




본문 발췌, 미리보기

원일은 여태 지각 한 번 안 하던 윤주가 늦자 고개를 갸웃했다. 준혁이 부탁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원일은 카페 바깥으로 나왔다. 팔뚝에 느껴지는 햇살이 제법 뜨겁다. 요즘은 도통 봄을 오래 느낄 수가 없다니까. 원일은 반듯한 미간을 구겼다. 그때 저 멀리 모퉁이를 돌아 달려오는 윤주가 보였다. 허겁지겁 가방을 고쳐 메고 달려오는 윤주를 보고 원일이 씩 웃었다.
사, 사장님!
원일을 발견했는지 전속력으로 달려온 윤주가 원일의 앞에 급하게 멈춰 섰다. 하마터면 윤주와 부딪힐 뻔했다. 커피를 높게 쳐든 원일은 워, 워, 하고 장난스런 추임새를 넣어 준다. 작은 손으로 헝클어진 앞머리를 정리한 윤주가 죄인처럼 고개를 조아린다.
뭐 얼마 늦지도 않았는데. 근데 덥지도 않아?
제가 더위를 잘 안 타서요.
그래. 어서 들어가.
네.
다시 한 번 인사를 한 윤주는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윤주가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한 원일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준혁의 스튜디오로 올라갔다. 자연스레 문을 열고 들어온 원일을 준혁이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본다. 사랑스런 여자 친구도 아닌 시커먼 사내놈이 벌컥벌컥 자신의 공간을 드나드니 이거야 원.
야. 벨은 폼으로 달려 있는 줄 알아?
우리 사이에 무슨 벨이냐.
능글스런 표정으로 혀를 내미는 원일을 보며 준혁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나 곧 책상 위에 오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보고 얼굴을 밝힌다. 플라스틱 컵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은 시원함을 그대로 머금은 듯했다. 단숨에 그것을 집어 든 준혁은 벌컥벌컥 들이켰다.
커피를 이온음료처럼 마시는 놈은 너뿐일 거다.
원일의 핀잔에도 준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컵을 비웠다. 캬, 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탄성이 준혁의 입에서 나온다. 커피라곤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컵 안엔 얼음 몇 개만이 달그락 거리며 흔들렸다. 지친 한숨과 함께 준혁의 맞은편에 자리한 원일은 까만 안락의자에 편히 몸을 기댔다.
카페에선 쉬어도 쉬는 게 아니야. 애들 관리해야지, 매장도 수시로 봐야지, 어휴.
그래서 지금 남의 작업장에서 쉬냐?
네가 남이야? 서운한 소리 하네.
야.
조금 높아진 준혁의 목소리에 원일이 눈썹만 들썩였다.
커피 왜 자꾸 네가 가지고 와?
느닷없이 무슨 소리야. 그럼 내가 가지고 오지, 누가 가지고 오냐?
너 말고 알바생들 시켜.
노는 내가 하면 그만이지 뭣 하러…….
말을 흐리는 원일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피규어를 만지고 있는 준혁은 원일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할까 싶어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손이 그 심정을 대변한다고 하면 되겠다. 원일의 입술이 한쪽만 비스듬히 올라간다. 이거, 이거 꽤나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다.
그래? 하긴 나는 사장인데 이런 배달은 알바생을 시켜야겠지?
그, 그래! 내 말이 그 말이야.
당황한 듯 황급히 맞장구를 치는 준혁을 보니 더욱더 확실해진다. 뭔가 집히는 것이 있지만 원일은 당분간 모른 척 해야겠다 마음먹는다. 이런 재미있는 일을 그냥 홀라당 넘겨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알았어. 그럼 누구한테 시키지? 음…….
그냥 아무나 시켜.
진짜 아무나 시켜?
어. 네, 네가 사장이잖아.
그래도 친구로서 제의 정도는 괜찮아. 받는 사람이 너잖아. 누구로 할까?
피규어를 만들던 준혁의 손은 이미 멈춘 지 오래였다. 멍한 표정으로 원일을 보는 준혁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진다. 이 자식. 눈치 챘구나. 준혁은 지금 당장 침대로 달려가 이불을 덮어쓰고 하이킥을 날리고 싶었다. 으악. 창피하다.
없어? 그럼 내가 알아서 보낼게.
사악하게 웃는 원일을 보며 준혁이 치를 떤다.
참, 카페에 진열하는 피규어 선물 준다고 한 건?
거의 다 했어. 조만간 줄게.
그래, 그럼 이 형은 이만 가마.
오른손을 가볍게 흔든 원일은 올 때처럼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나갔다. 아……. 콧노래 소리가 좀 더 커진 것은 기분 탓이겠지? 준혁은 원일이 나가는 것을 보고 바로 머리를 싸매고 절규했다.
카페로 돌아온 원일은 어떻게 준혁을 골려 먹을지 생각하는 것으로 반나절을 보냈다. 세훈이 들어와 마감 청소하겠다고 말하고 나서야 어두워진 바깥을 인식하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매장으로 나오니 손님들은 다 간 상태였고, 세훈과 윤주만이 남아 카페를 청소하고 있었다. 원일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벽에 삐딱하게 기대서서 두 사람을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느 쪽이 준혁이 원하는 쪽인지는 잘 안다. 그러나 원일은 괜히 검지로 두 사람을 번갈아 찍으며 노래를 불렀다. 원일의 기괴한 행동에 세훈이 질겁하며 매장 구석으로 도망쳤다. 청소에 집중하고 있던 윤주는 후다닥 소리와 함께 세훈이 멀어지자 그제야 시선을 원일이 서 있는 곳으로 돌렸다. 원일의 손가락과 눈빛이 정확히 윤주와 마주 닿았다.
너로 정했다!
네?
밀대 가져다 놓고 옷 갈아입고 와.
저요?
그래, 윤주 너.
멀리 도망갔던 세훈이 이유를 물었지만 원일은 곱게 씹어 드시고 윤주에게 할 말만 했다. 윤주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원일은 준비해 둔 커피와 와플을 챙겨 주었다. 대충 뭘 해야 하는지 알아차린 윤주의 입 언저리가 살짝 떨리는 것을 보았지만 이럴 때는 모른 체가 답이다.
2층 스튜디오.
사장님…….
어?
너무 밝게 되묻는 원일에게 윤주는 뭐라 대꾸할 수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직원이 사장에게 대꾸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일이지……. 아주 작은 한숨을 내쉰 윤주는 원일과 세훈에게 인사를 하고 스튜디오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동안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안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꾸역꾸역 걸어 스튜디오 앞에 도착한 윤주는 벨을 누르고 준혁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안에서 무얼 하는지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얼굴이 벌겋게 물든 준혁이 문을 열었다.
여기, 커피요.
윤주가 커피와 함께 작은 일회용기에 담긴 와플을 내밀었다. 그러는 중에도 준혁은 뒤집어진 머리를 정리하느라 바빴다. 하루 종일 아르바이트에 시달린 윤주는 몹시 피곤했기 때문에 이렇게 시간을 끄는 준혁이 야속했다. 한시라도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어 하는 자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래, 모르겠지. 모르니 이렇게 유유자적 제 할 일 하는 것이겠지. 어휴…….
잠시 들어오지?
네?
잠, 잠시 들어오라고.
윤주의 까만 눈동자가 도르륵 굴러가는가 싶더니 이내 준혁을 똑바로 보고 고개를 젓는다.
제가 왜요?
뭐?
저는 커피랑 와플만 배달해 드리면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래, 그렇긴 한데 가져가야 할 게 있어.
제가요? 사장님은 그런 말씀 안 하셨는데…….
아무리 침착하고 겁이 없다지만 저보다 머리통 하나는 큰 남자가 다짜고짜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니 윤주의 온 신경이 곤두선다. 세상만사 무심하다고는 하나 삶에 대한 집착은 있는 여자다 이거야. 윤주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더니 준혁이 나오기 이전의 상황을 되짚었다. 뭐지? 왜 우당탕거린 거고 얼굴은 왜 빨갛게 달아오른 거야? 온통 의문투성이다. 요즘같이 흉흉한 세상에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의 집으로 냉큼 들어가는 것은 그야말로 나사 하나 뽑힌 짓이다.
자신을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윤주 때문에 준혁은 멋쩍어 뺨을 살살 긁었다. 너무 앞뒤 자르고 말했나? 준혁이 푸우 하며 입 바람과 함께 고개를 흔들더니 타이르듯 말한다.
저기 네가 무슨 오해하는지 알 것 같긴 한데. 그런 거 아니야.
제, 제가 무슨 오해를 한다고 이러세요?
내가 널 어떻게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잖아. 네 얼굴 보고도 모르면 그게 바보다.
준혁의 말에 윤주는 괜히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얼굴에 너무 드러냈나 보다. 생존 본능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군. 윤주는 두어 번 헛기침을 하고는 민망함에 준혁의 시선을 외면해 버렸다.
원일이한테 방금 전화하고 나왔어. 내가 걔한테 줄 게 있는데 지금 거의 다 마무리했거든. 너한테 들려서 보낸다고 했어.
원일이요?
너 설마 네 사장 이름도 몰라?
입술을 말아 넣는 걸 보니 몰랐나 보다. 준혁은 눈을 가늘게 뜨곤 혀를 내둘렀다.
아무튼 들어와. 거의 다 끝났어.
말을 마친 준혁은 휙 하니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렇게 나와 버리니 안 들어가기도 이상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미 자신이 준혁을 어떤 사람 취급했는지도 들켰고, 재차 아니라고 말했는데도 못 믿으면 이건 또 다른 의미로 실례겠지? 잠시 고민하던 윤주는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움직여 안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