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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탐식가들

jihba 2023. 5. 20. 04:01

 어쩌다 밥먹으면서 보게 되는  한국인의 밥상 .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밥을 먹으면 밥맛이 훨씬 더 좋아지는  느낌이 든다. 각 지역에서 나오는 재료들로 만든 푸짐한 밥상을 받아든 최불암씨를 보니 식욕이 솟을 수 밖에. 전국 방방곡곡 각 지역의 특산물로 만든 별미를 먹는 것만해도 호사인데 거기에다 출연료까지 받는 최불암씨가 부러워지기까지 하는데 이런 경우 최불암씨를 탐식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그런데 이때 탐식가의 탐자는 찾을 探, 탐즐 耽  탐낼 貪 중 어느 쪽일까? 모두 다 해당하지 않을까. 먹을 것을 찾아다니고, 즐기고, 탐내고.   조선의 탐식가들 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 그랬다. 이 탐식가에선  어떤 한자를 쓸 수 있을까?하고. 이 책에는 조선의 음식과 인물을 다루고 있는데, 이 중 허균이 인상적이었다.  혀균과 달리 정약용은 유배 뒤에는  야채를 키우며 음식을 절제했던데 비해 이 당대의 풍운아 허균은 자신은 평생 먹을 것만 탐한 사람이라고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니 조선시대에 손꼽히는 탐식가이긴 했나보다.  명문가 출신으로 먹을 걱정없이 살았던 그였지만 이 책에서는 그가 탐식을 하게 된 원인을 그의 성장사, 애정결핌에서 찾고 분석하고 있는 것은 좀 의외였다. 거칠 것 없었던 그가 호방하게 술안주를 즐긴 정도가 아니었을까 짐작했는데, 그는 부임지에서 식도락을 꽤 즐겼고, 그것이 부임하는 즐거움으로 여겼다니.그의 탐식은 단순히 취향이나 식도락의 경지에 그치지 않았다. 음식품평서 도문도식 까지 냈으니 조선최초의 맛컬럼니스트였던 셈이다. 그는 맛마저도 학구적으로 탐구했던 진정한 탐식가의 경지에 이르렀던 셈이다. 허균같은 탐식가가 있었지만 군자를 추구했던 성리학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식도락이나 탐식을 권장했을 리는 만무하고, 그런만큼 탐식은 결코 권장되는 덕목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절제가 권장되었겠지만 하지만 인간의 본능인 식욕을 마냥 억누를 수는 없었을테고. 더욱이 사대부들은 끼니 해결을 넘어  체면을 차리면서 탐식의 자리를 만들었던 것이고, 권력의 전리품처럼 진미를 찾는 경향까지 있었다.  불교를 숭상했던 고려에서 육식은 금기시됐지만, 조선에서는 육식이 금기시되는 분위기도 해제됐다. 우심적은 존경하는 선비에게 바치는 음식으로, 난로회를 통해 함께 모여서 소고기를 즐겼고,우금령이 내려져도 소고기 수요는 여전했다. 심지어 난로회에 정조가 참석한 경우도 있었으니, 조선의 소고기 사랑은 유별났다. 이 책에서는 소고기 외에도 개고기나 두부 순챗국와 농어회, 그리고 승기악탕(勝妓樂湯) 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승기악탕은 왜관을 통해 전해진 일본음식 스기야키와 스키야키가  조선화돼 인기를 끌게 된 대표적인 경우였다.  군자를 추구하는 성리학의 세계에서 탐식을 즐겼다는 것은 개인에게, 사회에 어떤 의미였을까.조선의 탐식은 복잡하게 읽혔다. 지금처럼 음식이 상업적으로 개발되는 상황이 아닌만큼 식도락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탐식이 권력과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었다는 점에서 탐식을 통해 본능적인 욕망과 과시욕을 충족하려한 심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은 사대부들이 욕망에 눈을 떠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고, 자신들에게 가해졌던 성리학의 압박에서 조금은 느슨해져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요즘 유명한 맛집에 가서 인증샷을 올리며 행복한 일상을 과시하는 현대인처럼 부와 권력과 행복함을 과시하는 것처럼 시대는 변화해도 결국 음식을 대하는 인간의 욕망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이다.    

탐식이란 음식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지나친 몰두를 뜻한다. 중세 기독교에서는 탐식을 일곱 가지 대죄 가운데 두 번째 죄악으로 꼽았고, 조선 시대에서도 탐식은 부모로부터 받은 몸을 망가뜨려 불효를 하게 된다거나 집안 살림을 거덜 내고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으로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사대부 중심의 계급질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왕은 12첩 반상, 공경대부는 9첩 반상, 양반은 7첩 반상, 중인 이하는 5첩·3첩 반상을 차려먹도록 강제했다. 그러나 금기일 수록 더욱 유혹적인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찬가지, 성리학의 이데올로기가 밥상까지 장악한 조선에서도 규율을 비집고 맛을 탐한 이들도 분명히 있었다. 조선의 탐식가들 은 이덕무의 소박한 밥상론 으로 시작하지만, 그 소박한 밥상론을 배신하고 온갖 핑계로 맛을 탐한 조선의 탐식가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다룬다. 이 책에서 살펴보는 조선의 탐식가는 그 종류도 다양한데, 먼저 권력과 부의 맛을 밥상에서 느끼려 한 이들로 개고기 탐식가 김안로와 식전방장(사방 열 자 가량의 상에 차린 진수성찬)의 윤원형 등이 있다. 이들의 탐식은 권력을 잃고 나서는 정적으로부터 공격당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또, 진귀하고 맛난 음식을 찾아 먹고 기록한 이른바 맛집 탐방형 의 대표적 인물로는 우심적, 두부, 순채 등에 대해 수많은 시를 써서 남긴 조선 초기 문신 서거정과 조선 최초의 음식 비평서인 「도문대작」을 남긴 허균을 들 수 있다. 한편 탐식의 정반대편에 선 사람들도 소개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다산 정약용이다. 그는 천주교도로 몰려 긴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에 직접 채소를 가꾸고 밥을 상추로 싸 크기를 부풀려 먹으며 포만감을 느끼려 했다. 평소에도 소박한 식습관을 가진 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 조선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음식 사치와 주책없이 많이 먹는 것에서 찾았던 이익도 콩을 주식으로 한 소박한 식단을 몸소 실천한 이른바 악식가 (맛없고 거친 음식을 즐겨 먹는 사람)였다. 언론을 통해 소개되는 맛집 과 파워 블로거의 포스팅을 따라 색다른 맛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욕구가 넘쳐나는 오늘날, 우리는 먹을 것이 넘쳐 나는 축복 속에서 탐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지 분별해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옛 사람들의 탐식, 혹은 미식을 그린 이 책에서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는 것 보다 음식에 담긴 삶을 맛보는 것의 미덕을 발견한다면 탐식의 해악을 피해 멋스럽게 먹는 미식가의 길을 갈 수 있지 않을까.

추천사
맛깔스런 글의 성찬으로 차린 조선 시대 맛의 식탁 / 안대회

서문
성리학으로 차린 조선의 밥상
사대부, 어금니를 벌려 고기를 뜯다
이덕무의 ‘소박한 밥상’론 : 참다운 미식가는 절제할 줄 안다
조선 왕들의 식치 퍼포먼스
탐식가도 가지가지, 이유도 가지가지

1장
우심적, 존경하는 선비에게 바치는 음식
우심은 왕희지에게 대접함이 좋으리
천하 명소 팔백리박의 심장을 구워 먹은 왕제
헛된 칭찬은 우심을 욕되게 했네, 서거정
소 염통 구워 먹는 게 부추밭 가꿈보다 낫다, 정약용
‘왕희지의 당일적을 받았으니’, 권근
우심적을 천하제일의 요리로 꼽은 김문
부친 상중에 우심적을 먹은 채수

2장
우금령, 탐식가들의 입을 봉쇄하라
1668년 청계천 장통교 살인사건
육식 열풍, 조선을 강타하다
우금령은 잘 지켜졌을까?
단군 이래 최악의 우역이 전국을 삼키다
조선 사람들의 유별난 소고기 사랑

3장
난로회, 양반들의 소고기 탐식 풍속
음력 시월 초하루는 고기 먹는 날
규장각 신하들과 난로회를 즐겼던 정조
소고기, 어떻게 요리해 먹었을까?
양반들 입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든 열구자탕
조선에서 으뜸가는 소고기 탐식가, 김계우 부부

4장
가장, 사대부 양반들의 개고기 사랑
가장을 먹다가 요리사를 죽인 강원 감사
혜경궁 홍씨 생일상에 오른 ‘개고기찜’
개고기는 피를 씻으면 냄새가 난다?
박제가가 정약용에게 가르쳐 준 개고기 삶는 법
연경에 간 심상규가 개장국을 즐긴 일
김안로의 개고기 식탐
여덟 가지 개 요리를 남긴 중인 실학자 이규경

5장
두부, 다섯 가지 미덕을 갖춘 식품
중국인 열 중 아홉은 두부당?
목은 이색에서 소설가 최서해까지, 두부 500년사
명 황제도 감탄한 조선의 두부 맛
두부가 가진 다섯 가지 미덕
연포회, 양반들이 절간으로 달려간 까닭
양반들 등쌀에 중 노릇도 못할 판
실학자 성호 이익의 지극한 콩 사랑
추사 김정희가 꼽은 최고의 음식은?

6장
순챗국과 농어회, 사대부들이 동경했던 귀거래의 아이콘
사대부들에게 귀감이 된 ‘장한의 흥취’
가장 맛 좋은 순채는 ‘천리 순갱’
서거정은 순채의 시인
조선의 순채 요리는 왜 사라졌을까?
조선 선비의 농어회 먹는 법, 금제작회
다산, 송강 농어의 정체를 밝혀 내다
장한처럼 지금 곧장 오나라로 저어 갈거나

7장
허균, 조선 최초의 음식 칼럼니스트
나는 평생 먹을 것만 탐한 사람
허균이 탐식형 인간이 된 내력
허균은 천지간의 한 괴물입니다
도문대작, 조선 최초의 음식 품평서
한 고을을 얻어서 입에 풀칠이라도 한다면
유배지를 선택할 때도 방어와 준치 타령
허균은 과연 혁명을 꿈꾸었을까?

8장
정약용, 쌈으로 입을 속이며 채소밭을 가꾸다
내 좋아하는 건 오직 채소밭 가꾸는 것
나는 청빈으로 부호 귀족과 맞선다오
술의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다
다산의 소박한 밥상 : 두부·부추·토란·상추·쑥갓·겨자·명아주·비름나물
다산이 18년 귀양살이를 견딘 비결은 차

9장
승기악탕, 조선 사람들을 사로잡은 일본의 맛
조선 승기악탕의 정체 : 닭찜인가, 도미면인가?
조선 속의 작은 일본, 왜관이 생긴 내력
왜관의 승기악탕, 그것의 정체는?
스기야키를 맛본 조선 사람들의 반응

10장
조선을 찜 쪄 먹은 희대의 탐식가들
식전방장, 부호들의 호화로운 밥상
식전방장에 팔진미를 먹었다는 윤원형
조선 시대 탐식가들의 위시리스트
‘동방의 갑부’ 정사룡
주먹 하나로 부와 권력을 거머쥔 박원종
홍길동은 희대의 도적, 그의 형 홍일동은 대식가
다산의 9대조 정응두는 소문난 대식가
탐식을 빌미로 정적을 공격하다
금주령도 마셔 버린 술고래, 홍윤성
필탁의 주흥 : 오른손에는 술잔, 왼손에는 게 집게발

후기
탐식은 현대사회에 가장 흔한 범죄

인명 색인

참고도서
논문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