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김사과의 소설은 처음이다. 항상 이야기만 나눴었지 읽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너무 주관적이지 않나.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음악을 듣다가도 기분에 사로 잡힐 때가 있다. 나는 그것을 감정 이라고 부른다. 그러한 기분이 드는 것도, 그러한 생각이 드는 것도 다 내 감정 때문이라고. 그런 감정이 생기기 시작하면 나는 한없이 울적해진다. 혹시 당신도 그럴까. 김사과는 그런 기분을 글로 풀었다. 주관적이지 않나. 너무 감정적이지 않나. 기분에 의한 문체가 여기 있다. 김사과의 「더 나쁜 쪽으로」다.  중요한 것은 기분 이 말해주는 거리의 풍경이다. 낯이 익었던 그 모든 것들(거리의 색, 냄새, 소리, 거리를 덮은 어둠, 그리고 그 어둠 속을 가득 채운 사람들, 그들의 얼굴, 표정, 몸짓, 눈빛, 입술, 혀, 그리고 혀끝으로 떨어지는 말까지)은 김사과의 손끝에서 낯설게 변화한다. 낯익었던 것들이 낯설어지고, 낯설어진 것들은 생경한 것이 된다. 그것들은 어떤 기분이 되어 나 의 주위를, 독자들의 주위를 끈적하게 맴돈다. 오히려 그런 기분들 덕분에 사람들의 일상과 도시의 풍경은 새롭게 태어난다. 그리고 그들이 행하는 행위들 역시도 그렇다. 정해진 공간은 없다. 그저 거리. 지명이 있었나. 사실 지명을 지우더라도 그곳은 그저 거리에 불과하다. 역을 지나치고, 도로를 지나치고, 클럽을 지나치더라도 우리는 그곳이 해외든 국내든, 이태원이든 신사든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우리가 걷고 생활하는 이 모든 거리는 언제나 그 기분에 의해 낯설게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의식의 흐름이 자연스럽다. 꿈을 꾸는 것 같다. 어쩌면 생각이 꼬리를 물고 진행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끊임없는 흐름의 문체에 취해 나 역시도 「더 나쁜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어떤 것에 대해 의심이 솟구칠 때, 그리고 확신이 사라질 때, 익숙했던 것이 낯설어질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몇 가지 되지 않는다. 나 처럼 조용히 문을 열고 거리로 나오거나 그 자리를 지키거나.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나.
한국문단에서 활발한 비평 활동을 하고 있는 민족문학연구소((사)한국작가회의 산하 문학평론가들의 모임)에서 선정한 젊은 작가 8인의 소설집.

이번 소설집에는 담담한 어조로 현실을 추적하며 이에 대한 질문들을 제기하는 김미월, 세계에 대한 분노의 파토스를 텍스트에 전면화하는 김사과, 구체적인 동세대의 삶의 결로부터 소설의 실감을 확보하는 김애란, 발랄한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모든 권위에 도전하는 손아람, 역사적 맥락에서 자신의 세대적 정체성과 미학적 지향점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을 수행하는 손홍규, 환상과 현실을 뒤섞으며 우리가 발 딛고선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드는 염승숙, 마이너리티로서 세계 시민 간의 관계 맺음에 대해 숙고하는 조해진, 독기 어린 언어로 타락한 세상과 대면하는 최진영 등의 작품들을 실었다.

수록작품들을 통해 본 우리 사회는 ‘인풋input은 매우 치열하고 정상적인데 결과로서의 아웃풋output은 매우 허망하고 허무하고 비정상적’이다. 또 작품들 속 등장인물들은 ‘비정규직, 비혼자, 비정상인’으로 ‘죽도록 노력해도 비정상인으로서 외로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이러한 야만적인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젊은 작가들은 매력적이고 현실적으로 담아내는 데 성공했으며, 이는 시대에 앞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윤리를 제시하던 기존의 소설 역할과 달라진 점이라고 이야기한다.


기획의 말 | 동세대의 삶을 말하다

질문들 ­김미월
더 나쁜 쪽으로 ­김사과
큐티클 ­김애란
문학의 새로운 세대 ­손아람
마르께스주의자의 사전 ­손홍규
완전한 불면 ­염승숙
이보나와 춤을 추었다 ­조해진
창 ­최진영

좌담 | 사소하고 위대한 오늘의 질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