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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컴퓨터는 너무 힘이 드나 보다. 잠시 쉬기만 해도 화면에 까만 커튼 치고 잠을 잔다. 곤히 잠자다가 살짝 자판을 누르기만 해도 벌떡 일어나 까만 커튼 걷는다. 언제 잠잤느냐고 시치미 뚝 떼고 시키는 일을 한다. 내가 쉬기 전에는 꾀 하나 안 부리고 열심히 일만 한다. 아홉 살 현서는 컴퓨터 게임을 하지 못해 안달이다. 녀석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일주일에 한 시간씩 허용하지만 녀석은 다른 곳에서 분명 더 많은 시간을 하고 있다. 더 빠져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위 시의 화자는 꽤 성숙한 눈을 갖고 있다. 컴퓨터를 게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꾀 하나 안 부리고 / 열심히 일만’ 하는 존재로 여긴다. 아주 생각이 깊은 아이거나 아니면 어른의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김바다 시인이 일상에서 길어 올린 동시는 대부분 아이들 시선보다 어른 시각이 강하다. ‘석간수 받는 사람들이 / 물 한 병 부어 주자 / 쫄래쫄래 꼬리 흔들며 / 까만 올챙이들 잘도 논다.’(「까만 올챙이」)고 읊은 경우도 너무 어른스럽다. ‘팥빙수 안 쫄깃쫄깃한 젤리가 / 말랑말랑한 마시멜로가 / 쫀득쫀득한 젤리 과자가 / 꿈틀꿈틀 왕꿈틀이가, // 가죽 공장에서 버려지는 / 가죽 폐기물로 만’(「젤라틴의 비밀」)들어진다는 내용도 마찬가지다. 똥파리 똥만 주면 내가 대신 싹싹 빌어 줄게. 시인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드러낸 경우는 제 1부에 나오는 ‘곤충들의 이야기’이다. 짧은 몇 줄로 바로 핵심으로 진입하여 시의 맛을 느끼게 한다. ‘자꾸 내가 운다고 그러는데 / 열심히 / 청혼가 부르는 중이거든’(「매미」) 같은 경우는 곤충의 실체를 바로 드러낸다. ‘이불에 오줌 싸면 / 나한테 와 / 소금 그냥 줄게’(「소금쟁이」)나 ‘일이 안 풀릴 때는 / 언제든지 찾아와 / 살풀이굿 해 줄게’(「무당벌레」)는 곤충의 이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탄생한 경우라고 하겠다. 나라 이름을 갖고 상상력을 이어나가는 「손가락 지구본 여행」, 발음이 같거나 비슷한 사물을 연결시켜 과일을 줄줄이 노래한 「열매야, 이럴 땐 네가 필요해」, 물고기 이름에 필연성을 부여하는 듯한 「물고기 이름, 그냥 지은 게 아니야」 등도 말놀이 동시의 재미를 준다.
어린이문학 잡지에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 온 김바다 시인이 첫 동시집을 냈다. 나무, 새, 해, 달 등 무심히 지나쳐버리기 일쑤인 일상의 자연이 시인의 유쾌하고 재기발랄한 상상력과 만나 왁자지껄하고 아기자기한 동시로 태어났다. 때로는 여유롭고 넉넉한 시선으로, 때로는 날카롭고 섬세한 시선으로 자연을 마주하며 태어난 동시가 풋풋하고 새롭다. 우리 아이들을 유쾌한 상상의 세계로 이끄는, 재미나고 신나는 놀이마당 같은 동시집. 모두 60여 편이다.

머리말|눈, 귀, 마음과 통해 탄생한 동시들


제1부 곤충들의 이야기

잠자리
똥파리
매미
소똥구리
개미
점호리병벌
폭탄먼지벌레
소금쟁이
무당벌레
메뚜기
베짱이
명주잠자리애벌레
개똥벌레
나비들의 형님 자랑
손가락 지구본 여행
열매야, 이럴 땐 네가 필요해
물고기 이름, 그냥 지은 게 아니야!


제2부 감 따기

설날 아침
아까시꽃과 벌
봄 밤
목화 새싹
감 따기
망치와 못
나무와 톱
참새 식구
내 마음을
보슬비


제3부 해의 발자국

우포늪
무당벌레 급구
하얀 풍력발전기
해의 발자국
숲 속 연주회
바위에 누우니
깨워서 미안해
변신
황소 우리에 갔다가
곤충 친구들에게


제4부 왜가리 저녁밥

제발 부탁이에요
왜가리 저녁밥
중랑천 저녁 풍경

조마조마
확실한 이웃사촌
팬지꽃
컴퓨터
까만 올챙이
지구에서 우리 집 찾기
허수아비 만든 날
꼬리 잘린 산


제5부 태양이 보낸 청구서

태양이 보낸 청구서
투명감옥 1
투명감옥 2
함박눈 오는 날
젤라틴의 비밀
서울과 회령
금강산 관광
만주 벌판
상추야, 어쩌면 좋니
우리 엄마 언제 와요
엄마처럼
잠이 안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