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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24인의 예술가. 제목이 조선인은 조선의 시를 쓰라 여서 시인만 거론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조선 사대부에게 시는 교양의 상징이었을테니, 변계량같이 시를 포함한 좋은문장을 남긴 인물도 포함이 돼 있다. 그리고 연주자, 소리꾼, 화가까지 전분야의 인물들이 망라돼 있었다. 이들의 약전(略傳) 한편 한편이 흥미로웠다. 특히나 내 관심을 끌었던 인물은 알려진 이름보다는 생소한 이름들이었다. 장혼,조수삼, 정수동같은 기존의 전형적인 한시 내용에서 벗어나 풍자성이나 해학을 담아낸 시인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분부터 사대부가 아닌 중인 출신에, 활발한 시사활동을 이끌어 나간 인물이었으니 이들은 기존의 형식이나 내용에 얽매이지 않았다. 사대부 시인의 전형성이나 고답성을 탈피할 수 있었다. 그들은 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아내자연스럽고 민중지향적인 시를 읇었고, 그런 점에서 백성들에게 친숙하게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그만큼 생동감있고 일상적인 작품들의 탄생하게 된 것이었고, 이것은 조선 후기 문화적 흐름과 방향을 함께 하고 있었다. 그 전에 언급된 변계량이나 허균 등익히 알고 있는인물이나, 이인직 최남선, 홍명희등 친일파와 이에 대척점에 있는 홍명희나 한용운 같은 민중, 민족지향적 문학가들의 약전만 있었다면 식상했을 텐데, 이들 시인들 덕에 조선인은 조선인의 시를 쓰라 를 읽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문학, 예술에 대한 이이화 선생의시각이나 안목을 담은것이 아니라 대체적으로 자료를 모아 쓴 것이라는 점에서 더더욱이 그랬다. 특히나 정율성이라는 인물을 알게 된 것은 이 책을 읽은 의외의수확이었다. 조선의 시인 을 더 알고 싶었는데, 뜻밖에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한 현대 음악가였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된 작곡가였는데, 이런 인물을 여태까지모르고 있었다니..조선 독립을 위해 의열단 등에 가입했고, 대일 저항전선 최일선에 나섰던 인물이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음악을 배우고, 그 음악으로 혁명에 기여하려던 인물이었다. 이름도 율성(律成), 음률을 완성한다는 의미로 바꾼것에서부터 음악에 대한 확고한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해방후에 북한을 거쳐 중국에 정착하고 그곳에서 음악을 계속했는데,그가 작곡한 팔로군 행진곡 이 곡이 중국인민해방가로 정식 결정됨으로써, 중국 공식 행사장에서 불리는 곡이 될 정도의 실력을 가진 인물이었다니.. 심지어 중국의 3대 현대 작곡가로 꼽힐 정도라면 그 위상이 어느정도인지, 그만큼 대단한 인물이었다. 마침 그의 고향인 광주에서 오늘부터 정율성 축제가 열리고 있다고 하니, 그의 음악적명성이국내에도 대중적으로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예술은 아름다음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분야이지만, 또한일체의 틀과 구습과 제도, 불의에 저항하는 것도 예술의 한 몫이기도 하다. 이 책에 언급된 여러 시인들과 예술가들은 그러한 몫을 충분히 담당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표현 속에는 변화하는 시대, 새로운 가치, 정신을 지향하는 외침과 몸짓이내포돼 있다. 그것이 바로 예술혼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학자 이이화의 인물로 읽는 한국사 시리즈의 세 번째 권으로, 자유분방하면서도 시대의 고뇌를 안고 살았던 시인, 소설가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문장으로 겨레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명문장가에서부터, 여성으로서 시대의 굴레를 깨고 사랑과 삶의 애환을 노래한 여성문인, 세상 속으로 들어가 민중과 어울려 한바탕 유희판을 벌인 문인 재사, 암울한 일제시기를 보내며 지조를 지키기도 하고 굴절하기도 한 근대 문학가, 천재와 광기로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의 전도사들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들은 시대의 질곡과 굴레 속에서 때로는 현실에 저항하고 때로는 민중 속으로 뛰어들었는가 하면, 봉건사회에 순응하며 살기도 했고 불우한 시대 환경에 좌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예술적 끼로 재능과 열정을 펼쳐 한국사를 다채롭고 풍요롭게 만든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삶의 행적은 그동안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저자는 오랜 기간 이들의 삶을 단편적인 자료나 새로운 자료를 통해 추적하고 발굴했으며, 또 기왕에 잘 알려진 인물이라도 오늘의 시각에서 새로운 평가를 내리기도 하고 있다.

역사 속 인물에 대한 절대적인 평가 기준은 없으며, 시대 상황에 따라 평가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음을, 때문에 역사란 그저 오래전 일들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되돌아 보고, 곱씹어보아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은 흥미로운 얘기들과 함께 잘 보여주고 있다.


1부 겨레문학사의 새 길을 열다
변계량 정몽주와 정도전을 사사한 명문장가
서거정 천재적인 글솜씨로 문단을 빛낸 자유인
김시습 방랑과 저항의 일생
임제 칼과 거문고를 지니고 산 방외시인
허균 조선시대 반역과 이단의 상징

2부 굴레를 벗고 문밖을 나서니
황진이 아름답고 다재다능한 저항의 여인상
허난설헌 봉건시대의 굴레에 부대낀 한맺힌 부용꽃
계생 애수 어린 사랑과 고독의 시세계

3부 세상 속 민중의 벗이 되어
장혼 여항시단의 지도자
조수삼 불우한 환경 속에서 피어난 민중시
김삿갓 민중의 언어로 기성권위에 도전한 시인
정수동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시인

4부 식민지 시기 문인의 저항과 굴절
이인직 친일로 더럽혀진 신소설의 선구자
이상화 시대정신을 구현한 민족시인
한용운 붓끝으로 보여준 굳은 지조와 나라사랑
홍명희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정수 임꺽정 의 저자
최남선 굴절된 친일파 지식인

5부 천재와 광기로 꽃피운 예술혼
신재효 판소리의 아버지
이원영 거문고의 명인
송만갑 독창적인 창법의 판소리꾼
정율성 혁명과 음악의 만남
심사정 그림에 대한 정열로 고독과 싸운 화가
최북 광기 어린 행동으로 일세를 풍미하다
나운규 한국영화의 개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