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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콜로지카

jihba 2024. 2. 3. 17:48


하루 8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할 때, 한국인들은 독일인에 비해 연간 석달 반(114일)을 더 일한다. OECD 국가들에 비해서도 두 달(64일)을 더 일한다. 한국은 OECD 국가들 중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다. 1년 간 총 2285시간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연장 근로시간 제한의 고용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주 40시간 법정 근로시간 외에 연장근로 허용시간(주 52시간)까지 초과한 노동자들도 357만명에 달한다. 이렇게 일을 하면 보람과 행복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은 행복지수 도 바닥이다. OECD 34개국 중 32위. 우리 국민은 소 처럼 일하면서도 불행하다. 지구 반대편 스웨덴에서는 6시간 노동제가 확산되는 추세라고 한다. 반면에 우리는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끈질기게 요구해왔음에도 현실은 더 나빠지고 있다. 시간도 문제지만 노동의 질 도 문제다. 불안정 노동과 실업의 증가는 노동을사회 밖으로 내몰고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 사상가이자 정치생태학의 선구자인 앙드레 고르스는 <에콜로지카>에서 "고용불안이 심화되고 실업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노동의 덕목과 윤리에 대한 찬양은 지배전략의 일환으로 떠오른다"며 "노동자들이 얼마되지 않는 일자리를 놓고 서로 다투고, 조건이 어떠하든지 간에 일자리를 받아들이고 그 일자리들을 본질적으로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하게 부추기고, 노동자와 실업자가 노동과 사회적으로 생산된 부를 다른 방식으로 나누자고 힘을 합쳐 요구하지 못하게 한다"(166쪽)고 예리하게 분석한다. 모든 변화는 노동 에서 시작해 노동 으로 끝난다 유럽의 가장 날카로운 지성 으로 평가받는 고르스는 자본주의 출현 이후 지난 2세기 동안 지배해왔던 노동에 대한 관점을 재정립해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첨단과학기술과 결합된 자본주의의 생산력은 이미 고도로 발달했다. 생산에 투입되는 요소 중 자본과 기술의 비용은 압도적인데 반해 노동의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완전 고용 패러다임은 이미 붕괴했고 경제는 다른 방식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노동이 비중이 줄어든다는 말은 자본과의 경쟁에서 노동이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노동에 대한 새롭고 급진적인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이 고르스의 생각이다. 저자가 보기에 "경제가 노동을 필요로 하는 정도가 점점 약화되고 있고, 이 노동과 무관하게 생존할 수 있는 인간의 권리가 이제 이른바 지식경제의 발전을 좌우하는 조건이라는 생각은 사실 자본주의 정치경제의 근간을 공격하는 생각"(178쪽)이다. 그는 노동 시간과 노동 자체를 분리하고 누구나 자율적으로 자신의 노동시간을 결정할 수 있으며, 사회적 노동을 제공한 대가로 충분한 수당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봤다. 그는 임금노동이 가져오는 인간 소외를 꿰뚫어보며 이른바 고용의 독재 로부터 인간의 활동이 해방되기를 바랐다. 이러한 생각은 기본소득(생존소득)의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이것은 체계의 관리자로부터 삶을 해방시키고 인간의 자율성을 확보하며 생활 세계 를 지켜내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에콜로지카>는 정치적 생태주의 라는 뜻으로 이러한 고르스의 사상을 집약하고 있다. 생태사회정치의 근본적 의미는 모든 이에게 한편으로 덜 일하고 덜 소비하는 것, 다른 한편으로 존재의 더 많은 자율성과 안전을 확보하는 것 사이의 관계를 정치적으로 확립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노동시간을 전반적으로 축소함으로써 예전에 각자 나름대로 얻을 수 있었던 이점들, 즉 좀 더 자유롭고 느긋하고 보람 있는 생활이 모두에게 열릴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율규제는 더 이상 개인의 선택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프로젝트의 차원으로 승화한다. 따라서 우리는 충분함의 규범을 정치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중략)...생태사회적 정치의 핵심은 노동시간과 상관없는(노동시간은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노동 자체와도 아무 상관없는 최소한의 수입을 보장하는데 있다. 즉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을 재분배하여 누구나 일할 수 있고 일을 좀 더 잘하되 모두가 덜 하도록 하는데 있으며, 노동에서 벗어나 시간을 개개인이 자기가 선택한 활동에 쓸 수 있는 자율성의 공간을 창출하는데 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삶에 필요한 물품이나 서비스를 자체 생산함으로써 시장이나 전문가 또는 국가의 시혜에 덜 의존할 수 있다. 이러한 자율 생산은 삶의 연대성이나 사회성을 증진시킨다. 왜냐하면 그 과정에서 상부상조이 연결망, 각종 서비스의 교환, 그리고 비공식적 협동 등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75~76쪽) 저자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의 영역을 최소로 줄이자면 유통과 재고를 효율적인 동시에 가능한 방식으로 조직하고 조절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계획경제를 확대해야 한다"며 "저마다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노동시간대를 조절하고, 노동을 연속적인 방식으로 혹은 불연속적인 방식으로 할지 자유롭게 정하고, 하나의 활동영역에서만 노동을 할지 혹은 여러 활동영역에서 노동을 할지를 자유롭게 정하여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을 하는 대신에 평생 사회수당을 보장받는 것, 이 모든 것은 조절과 전반적 균형을 담당하는 중앙기구, 즉 국가가 존재해야만 가능하다"고(119쪽) 설명했다. 생산과 소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급진적인 변화 전산화와 자동화는 노동을 적게 투입하면서도 더 많은 양의 상품을 생산할 수 있게 한다. 생산단위 당 노동비용은 끊임없이 줄어들고 상품가격도 하락한다. 노동의 투입량이 줄어들수록 이윤이 줄어들지 않으려면 노동생산성이 더욱 증가해야 한다. 노동생산성이 무한히 증가해야만 이윤의 총량이 줄어드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러한 체계는 결국 한계에 다다르게 되고 생산에 대한 투자는 더 이상 충분한 수익을 내지 못하게 된다. 생산이 자본 가치 증식을 보장하지 못하니 자본은 점점 더 많은 부분이 금융자본의 형태를 띠게 된다. 금융산업이 점점 투기화되고 통제불가능해지면 세계 금융위기와 같은 경제 위기가 닥친다. 세계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퇴조의 징후다. 야만적인 자본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른 경제, 다른 생활방식, 다른 문명, 다른 사회적 관계를 찾아야 한다. 저자는 "붕괴를 피할 방도라고는 전시 경제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당국의 강압적인 자원의 배급, 제한, 할당제 같은 것 밖에 없다"며 "결국 자본주의로부터의 이탈은 이런 방식으로든 저런 방식으로든, 문명적으로든 야만적 방식으로든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단지 문제는 이러한 이탈이 어떤 형태를 띨 것인가, 그리고 어떤 속도로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34쪽) 강조했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한다 는 자본주의 문법과 결별하고 삶의 모델을 재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첨단과학기술의 발전은 생산력의 증대에도 기여하지만 생산수단의 사유화, 즉 공급의 독점을 점점 불가능하게 만든다. 저자는 "현존하는 혹은 개발 중인 하이테크 도구들은 일반적으로 컴퓨터 주변 기기들에 비교되는데, 이들이 지향하는 미래에는 실제적으로 모든 필수품과 유용한 물건들이 협동작업장이나 공동작업장에서 생산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런 시대가 오면 생산 활동이 실습과 교육, 실험과 연구, 새로운 취향, 풍미와 물질의 창출, 농업, 건설, 의학 등의 새로운 형태와 기술의 발명과 조합될 수 있을 것이다. 자체생산을 하는 공동작업장들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서로 연결될 것이며, 자신의 경험, 발명, 아이디어, 발견들은 서로 주고 받거나 함께 쌓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일은 문화의 생산자가 될 것이며 자체생산은 필요나 욕구 충족의 한 양식이 될 것"이라고(46쪽) 내다봤다. (공급의 독점이 불가능해지는) 결과 소비에 대한 자본의 장악력이 느슨해지고 소비는 상품 공급에서 해방되는 쪽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본주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균열이다. 주인이 있는 소프트웨어 와 자유 소프트웨어 사이에 벌어진 싸움은 이 시대의 중심 갈등의 시발점이었다. 이 싸움이 확장되어 일차적 부, 즉 일상적 문화를 구성하며 한 사회가 존재하는데서 선결조건인 땅, 씨앗, 유전자, 문화재, 공동의 지식과 기능들의 상품화에 대항한 싸움으로 연장된다. 자본주의로부터의 이탈이 문명적 형태를 갖출 것인지 아니면 야만적으로 이루어질 것인지는 이 싸움의 향방에 달려 있다. (44쪽) 저자는 "이러한 이탈이 필연적으로 내포하는 바는, 자본이 소비에 대해 행사하는 장악력에서, 또 생산수단의 독점에서 우리가 해방된다는 사실"이라며 "이 이탈은 생산주체와 소비주체의 단일성이 회복됨을 뜻하고, 그리하여 우리의 필요나 그 충족 양식을 규정하는데 자율성을 회복한다는 뜻"이라고(45쪽) 설명했다. 이런 급진적인 변화가 과연 가능할까. 저자도 이것이 자동적으로 실현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은 역사상 처음으로 그것이 실현되기를 바랄 수 있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위기는 기회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넘어서지 않으면 인간은 절멸을 피할 수 없다!
사르트르가 격찬한 ‘유럽의 가장 날카로운 지성’ 앙드레 고르스
그는 지금 우리가 미래를 위해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선명하게 제시해준다

정치생태학의 선구자 앙드레 고르스는 심각한 생태 위기를 불러온 성장중심주의의 자본주의가 왜 붕괴될 수밖에 없는지, 배금주의 사회 전체에 만연한 거품, 자동차와 소비지상주의 사회가 우리 삶에 행사하는 독재, 세분화된 노동의 끔찍함을 날카롭게 분석해낸다. 그는 이런 분석을 통해 이미 2008년의 금융위기를 예측하였다. 앙드레 고르스가 제기하는 인간과 자연의 상생을 위한 해법은 이미 재생 불가능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데서 시작하며, 생태적이며 사회적이고 또 문화적인 혁명을 지향한다. 생산방식과 노동을 비롯한 기존의 경제와 삶의 관행을 전면적으로 재편할 것을 주장하면서, 기본소득, 일자리 나누기 같은 구체적 해결책을 제시해왔다. 그의 예언자적 식견은 지금 우리가 미래를 위해 어떠한 길을 걸어야 할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머리말: 정치생태학: 해방의 윤리

1. 자본주의로부터의 이탈은 이미 시작되었다
2. 정치생태학: 전문가정치와 자율규제 사이
3. 자동차의 사회적 이데올로기
4. 파괴적 성장과 생산적 탈성장
5. 세계적 위기, 탈성장,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벗어나기
6. 가치 없는 부, 부 없는 가치

옮긴이의 글
해제: 앙드레 고르스와 함께하는 행복한 ‘지적 여행’│강수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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